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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것

매사냥

조선 166호(1929)   매사냥

 


  '일본서기'의 닌토쿠기(仁德紀)를 보면 닌토쿠천황 43년 9월 요사미 미야케의 아비코(依網屯倉阿弭古)가 매를 잡아 천황에게 바쳤다. 천황은 백제 왕자 사케노키미(酒公)에게 주어 훈련을 시켰다. 얼마 후 훈련시킨 매를 팔 위에 올려 천황에게 바쳤다. 천황은 모즈노(百舌野)로 행차하여 매를 날려 수십 마리의 꿩을 잡았다. 이것이 일본 매사냥의 시작이라 알려져 있으니, 매사냥은 백제로부터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조선에서는 매사냥을 한다. 특히 평안도와 함경도에서 많이 한다. 가을바람이 불 때부터 눈발이 날릴 때까지 이 지방에 가면 많은 개를 데리고 매를 손에 앉힌 매 사냥꾼 일행과 만날 수 있다. 내가 예전에 쓴 글이 있다.

 

        竹弓在手度嶙峋. 雪滿枯林風側巾.
        笑放蒼鷹追雉兎. 快心也勝獵官人.

 

  고려인은 눈이 날리는 산에서 손에 든 매를 날려 작은 새를 사냥하였다.
  조선에는 매 종류가 많다. 진응(眞鷹), 궐응( 鷢鷹), 진작응(眞雀鷹), 송골응(松骨鷹), 작골(雀鶻) 등으로 부른다. 진응은 창응(蒼鷹, 참매)을 일컫는다. 그 중에서도 중국인은 진응을 해동청(海東靑) 또는 해청(海靑)이라고 부르며 조선의 명물로 여긴다. 예전에는 조선이 매년 일정한 수를 정하여 공물로 베이징의 조정에 헌상하였다.
  또 도쿠시마 시대, 통신사가 일본에 갈 때는 반드시 매를 막부에 주었다. 그리고 일본 막부나 제후로부터도 대마도의 무네시(宗氏)를 통해 매를 구하는 일도 많았다.
  예전에 지금의 영고탑(寧古塔, 청나라의 발상지)에서 할거한 거란족은 수렵을 매우 좋아하여 백두산을 왕래하며 한반도 북부의 각지에서 해동청을 포획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鷹路라는 이름이 남아있다.
  '조선기문(朝鮮紀聞)'에 따르면 매는 황해도산을 좋은 것으로 치며 그 중에서도 장연(長淵), 강령(康翎)의 매가 최고라 하였다. 예전에는 이곳의 매를 매년 왕에게 헌상하였다. 강령 중에서도 백령도에 많이 서식하였다.
  매사냥은 그림으로라도 보고싶을 정도로 장관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궁내성(宮內省, 황실 업무를 관장하던 관청)에 겨우 보존되어 있을뿐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조선만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