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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것

맹꽁이

  요즘 너무 비가 적다보니 장마를 기다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비가 적은 날들은 동물들에게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그중 어떤 동물보다도 장마를 기다리는 동물이 있으니 이는 바로 맹꽁이이다.

  짧은 전성기를 빗대어 '메뚜기도 한철이다'란 말이 있지만, 사실 메뚜기보다 더 어울리는 동물이 맹꽁이이다. 왜냐하면 메뚜기는 여름에서 가을까지 보통 3-4개월은 너끈히 찾아볼 수 있지만, 맹꽁이는 장마 한철, 기껏해야 한달 남짓밖에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장마기 시작되면 어디서들 나타났는지 '맹-꽁-'하고 울기 시작한다. 사실 이 말에는 두 가지 잘못된 점이 있다. 첫째는 맹꽁이는 어디서 갑자기 온 것이 아니라 그 장소에서 계속 있었다. 맹꽁이는 참개구리나 청개구리처럼 뒷다리가 발달해 있는 양서류가 아니다. 그렇다고 두꺼비처럼 열심히 걸어다니는 것도 아니다. 몸에 비해 지나치게 다리가 짧은 맹꽁이는 그저 땅에 배를 붙이고 기어 다닐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자기가 깨어난 동네에서 멀리 떠나가는 것은 자력으로는 어렵고, 홍수가 나서 떠내려간다던지, 굴삭기로 살고 있는 곳의 흙을 퍼서 옮긴다던지 하는 일종의 '천재지변'이 있어야만 새 동네를 구경할 수가 있다.

  둘째는 맹꽁이는 결코 '맹-꽁-'하고 울지 않는다. 단지 '맹'하고 우는 놈은 그저 '맹'만, '꽁'하고 우는 놈은 그저 '꽁'만 할 따름이다. 그런 놈들이 모여서 울고 있으니, 듣는 입장에서는 '맹-꽁-'하고 우는 것처럼 들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맹'을 하고 누가 '꽁을 하는가? 답은 누가 먼저 '맹' 또는 '꽁'으로 울었는가에 달려 있다. 농담 같지만 여기에는 맹꽁이의 진화적 생식전략이 녹아 있다.

  '맹꽁이도 한철'이라고 했는데, 장마 한철은 맹꽁이에게는 자손을 남기기 위해 사생결단하지 않으면 안되는 중요한 시기이다. 축축한 땅속에서 절치부심하며 기다리고 있다가 때가 돼서 나와 짝을 만나야 한다. 그때 필요한 것이 소리이다. 짧은 다리로는 백방으로 기어 다녀봐야 소득이 없을 것이 뻔하니, '내가 여기 있다'라고 서로에게 알려 찾아오도록 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이렇게 짝을 부르는 역할은 수컷이 맡는다. 알 낳기 좋은 장소를 차지해 놓고 열심히 암컷을 부른다. 그런데 바로 너머에서도 자기처럼 암컷을 부르는 친구가 있네. 찾아가서 혼을 내줘야 할까, 소리를 더 크게 내서 기를 죽여줘야 할까. 맹꽁이가 찾은 답은 경쟁보다는 화합, 둘 모두의 소리가 전달되도록 우는 것이다. 소리가 겹치지 않도록 번갈아가면서, 각자의 소리가 구별되도록, 우는 타이밍과 목소리 톤을 조절하며 '맹-꽁-'하고 우는 것이다.

  맹꽁이가 기다려진다, 장마가 기다려진다. 그것도 맹꽁이가 편안하게 자손을 남기고 돌아갈 수 있도록, 너무 젖지도, 너무 마르지도 않은 점잖은 장마가.

<광주일보 2012년 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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